
호화로운 샹들리에와 그에 못지않게 고급스러운 침대와 이불. 너무나도 깨끗해서 없는 것처럼 보이는 창 너머로 햇살이 비치는 것이 보였다. 분명 마지막 기억은 누군가를 대하는 기억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뒤로하고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은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긴 치마의 드레스에 앞치마를 두른, 메이드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한 복장이었다. 흰 피부를 한, 곱슬한 금발을 가진 여자. 하지만 메이드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진한 화장으로 위화감을 주는 여자였다.
“아가씨, 일어나셨나 보네요.”
“당신은 누구야.”
경계를 늦추어선 안 되었다. 왜인지 그렇게 생각했다. 이 여자는 무언가 수상하다고 본능이 알리고 있었다.
“아가씨의 메이드, 뮤뮤랍니다. 아가씨의 기억 능력에 ‘조금’ 문제가 생겨 고용인은 전부 고용인의 복장을 하고 있는데 이 복장은 기억하시겠지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뮤뮤라고 밝힌 여자는 웃었다. 분명히 메이드의 복장이었다. 그렇지만 기억 능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 어딘가 찝찝했다.
“식사하셔야죠. 그 전에 씻고 단장시켜드려야죠. 이 뮤뮤가 말이죠.”
여자, 아니 뮤뮤는 그리 말하며 다가왔다. 그 손에는 물이 담긴 대야가 들려있었다. 뮤뮤는 왜 물이 담긴 대야를 가지고 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해 경계하자 뮤뮤는 다시 한번 입을 열곤 설명했다. 하지만 경계하는 죠린을 보는 뮤뮤의 얼굴에 먹잇감을 보는 짐승의 얼굴이 일순 드러났음을 죠린은 몰랐다.
“이 대야는 당신을 씻겨주기 위한 물이 담겼답니다. 저 뮤뮤가 당신을요.”
그렇게 말하며 어느새 가까워진 뮤뮤는 수건을 대야에 담궜다. 물을 머금은 수건을 짜서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숨이 막혔다. 수건을 떼어내려 발버둥 쳤으나 소용없었다. 누구야, 왜 날 죽이려는 거지? 누가 됐건 때려눕혀서 이유를 물으면 그만이지. 그런데 숨이 막혀. 누구지? 얼굴을 막은 젖은 수건이 떨어졌다. 콜록대며 급히 숨을 들이쉬었다. 올려다보자 진한 화장의 여자가 내려다보는 게 보였다. 마치 고양이가 장난감 쥐를 갖고 노는 듯한 표정의 여자.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건가요. 아가씨? 이제 세수도 끝났으니 머리를 단장해드릴게요. 저 뮤뮤가 말이죠.”
뮤뮤라고 밝힌 여자는 등 뒤로 와 머리를 손질해주었다. 그 손길이 퍽 익숙한 듯 능숙하게 머리를 올리고 땋아주었다.
“좋아, 너는 이 모습이 가장 잘 어울려.”
등 뒤에서 그렇게 말한 여자는 그리 말하며 웃곤 한 손으론 어깨를, 또 한 손으론 팔로 감싸안듯이 돌려 쇄골 부근을 붙잡았다. 목덜미에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 놀라 고개를 돌리고 싶었으나 거미줄에 붙잡힌 듯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포식자 앞의 피식자가 된 것마냥 공포가 밀려들었다. 그 생각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몸에 힘을 주곤 저항했다. 하지만 그 모든 저항이 헛수고라는 듯 거미줄에 걸린 나비에게 마비 독을 주입하듯이 입술을 맞춰왔다. 몇 번을 츕, 츕 소리를 내며 입을 맞추더니 잡아먹을 듯이 혹은 관능적이게, 송곳니를 세워 뜯어 먹을 듯이 물었다. 한 손으론 등줄기를 쓸어내려가다가 허리춤을 꼭 끌어안았다.
오싹했다. 정말 자신은 잡아먹히는게 아닌가 하고.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멱살을 잡으려 한 것을 알아챈 듯 곧바로 떨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싸늘한 눈빛의 진한 화장의 여자가 있었다. 싸늘한 눈빛은 곧 재밌다는 표정의 웃음으로 바뀌었다. 기분 나쁜 여자였다. 마치 저 여자의 손바닥 위에 놀아나고 있는 느낌. 하지만 저 여자의 얼굴은 내 기억 속의 모든 곳을 뒤져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듯한 분위기에 적대감을 가득 품고 노려보았다. 그러자 가면을 쓰듯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답니다. 뮤뮤가 가지고 왔어요.”
“아, 아침 식사? 응. 두고 가줘.”
죠린이 떨떠름하게 말하자 뮤뮤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죠린은 눈치채지 못했다.
***
죠린 쿠죠의 목덜미에 남은 립스틱 자국을 보았다.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났다. 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웃었다. 그녀에게 들키지 않도록.
그래, 너는 앞으로도 계속, 오로지 세 가지만 기억하며 사는거야. 나의 능력으로 영원히 너를 잠재울거야. 다른 모든 건 다 잊어도 좋아. 그 세 가지 기억 중에 나 뮤뮤, 뮤치 뮬러를 영원히 새기는거야. 그러면 내 새장 안에서 내가 질리기 전까지 영원히 살 수 있게 해주지. 그걸 위해서라면 내가 네 메이드라는 우스꽝스러운 연극마저도 해주겠어.
죠린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여자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 편안함에 익숙해져 금방 눈 속의 반짝임을 잃곤 했는데 죠린은 아니었다. 언제나 나를 눈 속에 담을 때면 의심과 경계라는 반짝임이 꺼지지 않았다. 그 반항적이게 반짝이는 눈이 짜릿했다. 네 반짝임이 꺼지는 게 먼저일까, 내가 네게 질리는 게 먼저일까.
내가 너에게 질리기 전까지는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내 몫이고 내 선택이야. 네 의지나 선택따윈 끼어들 틈도 없이 네 목을 조여놨어. 그럼에도 네 눈만큼은 반항하려 드는 게 무척이나 아름답고 마음에 들어. 그러니 내가 질리지 않게 계속 변하지 않기를.


뮤뮤죠린
MADE BY 린넨

뮤치 뮬러 X 쿠죠 죠린